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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2013_09_26] "32년 열심히 산 보상받은 기분... 잘했다 하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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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882회 작성일 13-09-2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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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2013_09_26] "32년 열심히 산 보상받은 기분... 잘했다 하시겠죠?"

1380180185_0.583859.jpg1380180185_0.652457.jpg"찾기 어려울 거예요." 서울에서 세종특별시 고운동까지,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건만 정말로 찾기가 쉽지 않았다. 세종시 임시터미널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허허벌판엔 '공사중' 표지만 나부꼈다. 택시를 잡아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네비게이션도 알지 못하는 아파트 공사현장을 찾아 빙빙 돌았다. 주소를 입력해도 소용없었다. 지도에 없던 길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마을 어르신을 붙잡고 여쭸다. 새로운 지명에 다들 어색해 했다. 도저히 찾을 방도가 없었다. 결국 윤여정씨에게 전화를 걸어 묻고 물은 뒤에야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과정을 함께한 택시기사는 '도대체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누굴 만나려고 이 고생을 하느냐'며 물었다. 많은 설명 대신, '충분히 그럴 만한 청년이 있다'고만 답했다.  지난 23일 가을 햇살 가득한 세종특별시 고운동 1-1 공사현장 식당에서, '충분히 그럴만한' 쌀집 총각 윤여정(32)씨를 만났다. 이름이 윤여정? 동명의 유명한 중년 여배우가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리부리한 눈, 조각 같은 얼굴. 한눈에 봐도 불공평한 외모를 지닌 한 청년이 나타났다. 정말로 쌀집 총각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누가 봐도 준수한 이 청년, 놀라운 일을 벌이고 있었다. 복지관 후원을 하고 꿈이 있는 학생들 돕는 일이다. '별 거 아니라'며 스스로를 낮췄지만, 인터뷰 내내 그를 아는 사람들이 모두 와서 한 마디씩 거들었다. "이 총각 진짜 바른 사람이야. 안 도와줄 수가 없어. 공사하다 남은 구리선이며 폐지, 고철 보면 이 친구 얼굴이 생각난다니까. 아주 자동이야 자동."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윤여정씨는 다시 한 번 '부끄러운 일'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의 성품이 온전히 보였다. 처음부터 그럴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다. 쌀집 총각답게 가게에서 나온 쌀포대를 모아 용돈이나 벌어볼 마음에서 폐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에 폐지 50㎏를 팔았어요. 6천 원 받았습니다. 노력에 비해 허무하더라고요. 차에 굴러다니는 아무 병이나 잡고 구겨 넣었습니다. 고민 안 하고 넣다 보면 연말에 소고기 한 번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폐지가 나올 때마다 팔았다. 그렇게 넉 달을 모았다. 술병 모양의 저금통엔 더 이상 지폐와 동전이 들어가지 않았다. 열어보니 '29만5000원' 적지 않은 돈이 있었다. 그 순간, 윤씨의 머릿속에 옛 생각이 스쳤다.  그는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랐다. 스스로 말하기를 "어릴 때 먹고 싶은 거 먹지 못해 세상에 불만만 가득한 소년이었다"고 밝혔다. "그게 제일 서러웠어요. 왜 나만 어려울까? 남들 공부할 때 신문 돌려야 했고, 남들 놀 때 돈 벌어야 했으니까요. 그 중에서도 먹고 싶은 거 먹지 못하고 지내온 게 제일 기억이 나요. 불만 가득했죠. 그걸 세상 탓으로 돌렸고." 그런데 세월이 약이라 했던가. 세상에 불만 가득했던 소년이 어느새 커, 어렵게 모아 놓은 돈을 보자 '스스로에게 특별한 선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 아이를 알게 됐다. 윤씨처럼 한 부모 가정 소년이었다. 윤씨가 평소 쌀 정기후원을 했던 대전기독교사회복지관을 통해 '결연후원'을 맺게 됐다(기자도 이 복지관 소식지를 통해 윤씨를 처음 알게 됐다). 여기서 윤여정씨는 비밀 한 가지를 고백했다. "폐지를 모으기 시작한 게 올 초부터예요. 그리고 제 생일인 7월 15일에 결연후원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저랑 생일이 같은 친구를 찾았는데 없더라고요. 그래서 꿈이 있는 아이를 찾아 달라 했습니다. 환경이 어렵다고 꿈을 포기한 채 살면 슬프잖아요." 윤씨는 결연후원을 결정하고 오는 길, 멀찍이 소년을 보게 됐다고 한다. 가서 말을 건 것도 아니고 그저 멀리 서서 지켜만 봤다. 윤씨는 이 부분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지난 32년 열심히 살았다는 보상 받은 기분이었어요. 만약에 아버지랑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이렇게 말씀해주셨을 거예요. 윤여정, 잘했어. 잘 컸네." 윤여정씨의 직업은 두 개다. 본업인 '쌀집총각'과 지난 여름부터 시작한 '공사현장 식당관리'. 덕분에 만나는 사람들도 많았졌다.  "처음엔 오해도 많이 받았어요. 쌀집 사장님도 '너 투잡 뛰는 거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고요. 말이 좋아 고철과 폐지지. 남이 버리는 물건이잖아요. 쓰레기를 정리해야 하는 일입니다. 어느 땐 정말 이걸 왜 하나 싶기도 했고요."  하지만 윤씨가 폐지와 고철을 모아 기부를 하고 있는 소식은 알게 모르게 주변으로 퍼졌다. "이젠 사람들이 먼저 신문 모아놓은 거 있다. 고철 쌓아놨다. 옷가지 좀 챙겨 놨으니 가져가라는 말을 많이 해주세요. 그저 감사합니다." 윤씨는 폐지를 모아 기부한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일단 본인부터 변했다. "자신감이 생겼어요. 사람들이 좋게 생각해 주고, 먼저 물어봐주니까. 정말 할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무엇보다 지금 제 삶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게 느껴져요. 지인들도 '기부'에 대한 생각이 '어려운 게 아니구나' 변하게 됐고요." 윤씨는 더불어 '책임감'을 이야기 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돼요. 이를 닦다가도 물 컵을 사용하면 좀 더 아낄 수 있지 않을까. 아무 생각 없이 켜 놓은 전기가 있지 않나. 폐지라는 쓰레기가 모여 기부할 수 있는 돈이 되니까, 매일 쓰는 물과 전기부터 아끼게 되더라고요. 넓게 보면 우리 지구에 대한 책임감이 생긴 거죠." "새벽 5시에 출근합니다. 쓰레기를 모아야 내다 팔 수 있거든요. 깨끗하거나 품위 있진 않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일찍 나와서 더 신경 쓰고 정리하고 있어요.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재밌습니다. 저도 좋게 변하고 주변도 긍정적으로 변화하면서 까짓것 세상도 바꿔볼 수 있다는 희망도 보이거든요." 그의 말처럼 윤씨의 하얀 트럭엔 '세상을 바꿀' 고철이며, 폐지가 한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끝으로 언제까지 기부를 할 건지 물었다. 윤씨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 아이가 제게 소주 한 잔 사 줄 그날까지"라고 답했다.  '최소 만 18세는 넘어야겠네요'라는 말에 윤씨는 앞으로도 족히 10년은 폐지를 모아야 한다며 웃어보였다. 윤여정씨의 10년, 그로 인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변화할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의 행보가 계속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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